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파업 사태 (문단 편집) == 여담 == * 상술했듯이, 억만장자 구단주와 백만장자 선수 사이의 추악한 이권 다툼으로 인하여[* 특히나 선수노조의 경우에는 구단주 측에서 먼저 샐러리캡 제도를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어깃장을 놓는 바람에 '돈만 아는 집단'으로 매도된다. 이에 당시 선수노조 대표였던 [[톰 글래빈]]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가장 큰 상처를 받은 것은 팬들이었고 1995년 메이저리그는 전년도와 비교해서 상당한 관중 감소를 기록했고 이는 이후로도 몇 년 동안 이어진다. 이처럼 쇠락한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되살리기 위해 MLB사무국에서는 1997년부터 [[인터리그#s-2]]를 도입했다. [[칼 립켄 주니어]]의 2131경기 연속출장 신기록 달성에 이어, 1998년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약--홈런왕 경쟁으로 팬들의 발길을 다시 야구장으로 돌리는 데 성공은 했다. * 1991년~1993년 1차 3연패(Three-Peat) 이후 [[NBA]]에서 은퇴해서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마이너리거로 활동중이었던 [[마이클 조던]]은 당시 더블 A팀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보여주면서 1994 시즌이나 1995 시즌 중에 메이저리그로 콜업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받았었는데[* 물론 이 당시 이미 마이클 조던은 30이 넘어갔고, 더블 A에서 기록한 성적도 연령이나 10년 넘게 야구와 거리를 두고 살았던 점들을 고려해서 괜찮았다는 거지, 결코 훌륭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 콜업이 됐더라도 어디까지나 이벤트성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조던이 전세계 스포츠 최고의 슈퍼스타였단 걸 생각하면 보통 이벤트는 아니었을 것이다. 조던의 마이너리그 경기에만도 전세계에서 수백명의 취재기자가 찾아왔는데 그런 대스타가 메이저리그 무대도 밟는다면? 하지만 혹자는 더블 A에서의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초반 성적에 비해 후반 성적이 미친 듯이 좋아졌다는 점에서 조던의 성장 속도가 엄청 빨랐기 때문에 대스타는 몰라도 순수 실력으로 메이저리그 콜업까지는 해냈을 것이라 평가하였다. 그리고 단순히 이벤트성으로라도 좋으니 메이저리그를 밟고 싶었던 것이었으면 조던은 화이트삭스가 아닌 메이저리그 로스터 계약을 제시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갔을 것이다.], 조던은 파업에 동참해 대체선수로서 MLB에 콜업되는 것을 거부했고, 이후 결국 다시 NBA로 복귀하여 1996년부터 1998년까지 2차 3연패를 기록한다. ||[[파일:seibu-lions-hisanobu-watanabe-1994-japan-championship-october-31-1994-sports-illustrated-cover.jpg|width=400]]|| * [[1994년 월드 시리즈|월드 시리즈]]가 취소가 된 탓에 가을야구를 보고 싶었던 일부 미국 야구팬들은 대신 같은 해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맞붙었던 [[1994년 일본시리즈|일본시리즈]]를 찾아 보기도 했고, 세이부의 에이스 [[와타나베 히사노부]]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 해 일본시리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시리즈 최종전이었던 6차전 개최 직전에 요미우리의 OB이자 세이부의 감독이었던 [[모리 마사아키]]의 경질을 [[도쿄 돔]] 전광판에 속보로 알려 우승팀으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짓으로 욕을 먹었다.] 시카고 등 일부 지역 방송사는 아예 자체적으로 일본시리즈를 중계하기도 했다. 또한 1995년 시즌 개막 일정 역시 파업으로 미루어진 탓에 [[케빈 미첼]]([[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다이에]]), 셰인 맥(요미우리) 등 일부 메이저리그 주전 선수들이 한 시즌을 [[일본프로야구]]에서 뛰기도 했다. 이러한 선수들 중 가장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바비 발렌타인]] 감독과 함께 [[치바 롯데 마린즈]]에 입단한 [[훌리오 프랑코]]. 프랑코는 익히 알려진 대로 1995년 한 시즌을 뛰고 돌아간 뒤에도 1998년 다시 일본 치바 롯데, 2000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동양야구를 경험했고 이후에도 일본 독립리그와 KBO [[롯데 자이언츠]] 코치를 역임하는 등 아시아 야구계에도 족적을 남겨오게 된다. * 선수노조의 파업 결정에도 구단의 시즌 강행 지시로 반강제적으로 메이저리그로 콜업된 마이너리그의 대체인력 선수들이 있었는데, 1995년 시범경기와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가했다. 공식적으로 시즌이 개막하기 전 단체협약(Collectiv Bargaining Agreement)이 타결되면서 대체선수 신분으로 공식 경기에 참가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들 대부분은 파업대오를 깬 배신자[*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상황을 생각해보자.]로 간주되어 이후에도 메이저리그 선수노조에 가입을 거부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훗날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가 되어도 우승 반지를 받지 못하게 된다. 이 시기 콜업된 선수들 중에는 이후에 '떠벌이' [[케빈 밀라]]나 [[코리 라이들]]처럼 메이저리그 주전급으로 성장한 선수도 있었고, [[덕 브래디]], [[에드가 캐세레스]], [[마이크 부시]], [[조엘 치멜리스]], [[조 스트롱]]등 [[한국프로야구]] 초창기 [[외국인 선수]]가 된 선수들, [[알렉스 라미레즈]], [[베니 아그바야니]], [[엔젤 에체베리아]], [[셰인 스펜서]] 등 일본 야구를 경험하게 되는 선수들도 더러 있었다. [[분류:1994년/사건사고]][[분류:클린턴 행정부/사건사고]][[분류: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분류:파업]][[분류:1994년 야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